일상

대동제

HJ Works 2009. 5. 22. 10:26

 

올해 대동제는 별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쭉빵 미녀 가수가 오지 않으니까.

 

소문에 의하면 AS가 다른 학교로 가버리는 통에 왠놈의 인디밴드만 오지라게 모여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올해는 그냥 공부방에서 책이나 보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자제심이 없는지 아니면 당연한 현상인지, 음악에 춤을 추거나 공연을 할때는 잘 안들리다가 밴드 공연만 하면 밖을 쳐다보았다.

 

처음엔 넘버원코리아라는 밴드를 봤고, 두번째는 스토리텔러라는 밴드를 봤다.

 

첫번째는 트럼펫을 부는 사람이 있었던 특이한 밴드였고, 두번째는 전부 여성으로 이루어진 그룹인 듯 했다.

 

그때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밤 열시 쯤이었나, 집에서 볼 게 있어서 짐을 싸서 나왔고, 학생회관 앞에서 우리 과가 주점을 하는 것을 보았다. 과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아는 척을 했다. 반가운 척도 했다.

 

술이 몇 잔 돌고, 자제해야 할 것 같아서 집에 가려고 했다. 그때 무대에서 진행이 하는 소리를 들엇다. "레이지본!"

 

솔직히 난 레이지본이라는 밴드를 잘 모른다. 그냥 그런 밴드가 있구나, 언더에서는 꽤 유명한 밴드중 하나이구나, 하는 정도였다.

 

친구들이 스탠딩을 하러 가는 통에, 잠깐 구경이나 할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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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제심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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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지본 공연이 끝날 때까지 1분도 손이 어깨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락이 뭔지, 메탈이 뭔지도 모르는 멍청이 주제에 Love & Peace를 외쳐대며 손을 치켜세웠다. 밴드에서 나를 봤을리는 없지만.

 

아는 노래도 없는데, 대충 구절만 알 것 같으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내가 무슨 린킨파크의 체스터 베닝튼도 아닌데, 있는대로 소리를 질러대니까 목소리가 갈라졌다.

 

메탈의 음악이 사람을 들뜨게 하는건지, 아니면 강한 음악을 뿜어내는 스피커가 사람을 뛰게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그 자리에 서있으면 도저히 스탠딩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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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공부방에서 몇몇 밴드의 공연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4학년때는 학교 축제에 잘 참여하지 않을 것 같고, 올해가 마지막인데 나는 올해 축제를 이런 식으로 끝내는구나."

 

뭔가, 조금씩 생기던 아쉬움이 점점 커져서 약간 서러웠다. 그리고 멍청하다고 느꼈다. 내가 마땅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것도 아니면서 무슨 공부를 하겠다고 축제 참여도 안 하는 건지.

 

그러던 중에 우연히 보게 된 과 주점의 친구들과, 레이지본의 공연은 오랜만에 날 들뜨게 만들어준 것 같다.

 

이걸로 나는 대학 축제에 참여해 보았다는 기록 하나를 마음 속에 갖게 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지만.